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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보헤미안의 파리 by 에릭 메이슬


보헤미안의 파리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에릭 메이슬 (북노마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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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hemian's Paris: 창조적인 영혼을 위한 파리 감성 여행


올해 초였던가, 언니가 어학연수 중이던 프랑스의 Tours에 몇일 방문하던 중 함께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곧 다가올 우리의 파리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 계획에 대해 말하다가 언니와 곧 말다툼을 하게됐다. 얼마 전, 친구들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가서 친구들의 여행 사진들을 보았는데, 다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류의 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무언가 충격을 받았던 난, 파리에서는 카페 기행도 해보고, 파리에서 제일 맛있는 쇼꼴라, 제일 예쁜 귀걸이, 가장 적막한 거리 등 '나만의 파리'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내가 억지스럽게 주장한 것이 바로 유명한 박물관, landmarks, 관광지에 시간과 예산과 '찍고 올 곳들'을 정확히 짜서 가기 보다는 몇일동안 대충 '어느 지역에는 뭐가 있다'는 막연한 사전지식만 가지고 골목골목 길도 잃어가며 자유로운 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거리에 거리를 따라 걷고, 추우면 카페에 가서 핫쵸코 한잔, 더우면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지치면 벤치에 앉아서 여유롭게 책도 읽어보고, 생각나는 친구들에게 엽서도 쓰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선물로 보내주시는 여행이라 언니는 아무래도 맏이로써 효율적이고 값진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약간의 책임감/압력을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도 막연한 '나만의 여행'에 대한 이상만 큰 목소리로 제시했을 뿐, 정확히 어떻게 하는 여행이 '나만의 여행'인지, 그래서 파리에 가서 어떻게 하자는 건지 잘 설명하지 못했으니 문학도랍시고 약간 겉멋만 든 철부지 동생의 앙탈로 받아졌을 만도 하다.

그렇게 그렇게 파리 여행을 끝내고, 귀국해서 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는데, 얼마 전 12월 초였던가, 동네 서점에서 사촌동생과 책을 고르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책이 뒤집혀 있어서 뒷커버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플래시가 갑자기 터지듯 시야가 환해졌다.

가방을 둘러매고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남들도 다 하는 천편일률적인 여행이고
흔하디 흔한 휴가이며, 내가 지금 마음 속에 그리는 그림과는 완연히 다르다.


내가 속상할 때, 나의 마음을 열심히 설명해 보아도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친구는 드물다. 그런데 내가 확연히 개념화하지 못한 이상과 바람을 내 마음 속에서 떠내어 단 두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그 밑을 더 읽어내려다 보니:

산책하기, 생각하기, 사랑하기, 그리고 창작하기...
파리 감성 여행 수칙 10
01 보주 광장으로 달려가기 | 앉아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자.
02 느릿느릿 산책하기 | 다채로운 풍경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맛보는 방관자로 살아보자.
03 벼룩시장에서 과일 사기 | 과일을 고르며 좋은 것은 나쁜 것을 꼭 필요로 한다는 원리는 받아들이자.
04 이른 아침, 오르세 미술관 찾기 | 쾌적한 아침, 텅 빈 미술관의 침묵을 느껴보자.
05 작은 수첩 갖고 다니기 | 어디에서든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다면 지체 말고 수첩을 꺼내자.
06 여행자가 아닌 창조자로 살기 | 관광지를 찾는 데 시간을 바치지 말자. 당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자.
07 귀엽고 상냥한 파리의 다리 걷기 | 파리의 다리에 올라 일단 멈추자. 그리고 무언가를 상상해보자.
08 작은 공원 찾기 | 작은 공원을 찾자. 그림같은 파리의 공원은 인생에서 느끼는 결핍을 살며시 건드린다.
09 마음에 드는 카페와 서점 찾기 | 카페와 서점은 '예술가의 집'이다. 집 같은 카페와 서점을 찾아라.
10 파리에서 다른 도시로 떠나기 | 보헤미안은 탐험을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아름다운 도시들을 여행하고 낯선 문화의 숨을 구석을 관찰하라. 떠나라. Why not?

이 감동적이고 나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아버린 책의 주 목적은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한 여행으로 6개월 동안 파리에 가서 보주 광장과, 예술가들의 카페와, 예술혼이 길거리에서도 존재하는 파리에서 마음껏 창작하고 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단 작가 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파리의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쓸 수도 있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내 눈앞에 펼쳐지는 무언가 가슴절이게 애틋한 풍경, 파리의 연인들, 그리고 훗날 나를 다시 파리에 있는 '지금 이순간'으로 이동 시켜 줄 순간의 기록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 자유로운 방황, 여유롭고 낭만적인 기지개와 같은 여행을 하는 방법, 그리고 파리를 눈과 입으로 뿐만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 하루에 세시간씩, 총 6시간 안에 읽어내렸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미 다시 그 때 그 곳들로 떠남을 느꼈다. 언니와 방문했던 퐁피두 센터, 그 뒷골목에는 작고 사랑스러운 공원이 있고, 내 파리 사진첩에 가득 담겨있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조금만 더 가면 이러이러한 카페들이 모여있고... ....